딱 110년이 흘렀습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근대식 대중 토론의 장'을 열었던 만민공동회가 열렸던 게 1898년입니다.
이를 주도한 것은 서재필이었지만 주인공은 역시 '깨어있는 민중'이었습니다.
만민공동회에서는 정부 시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당연히 정부는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만민공동회의 배후를 캐물었고 결국 그해 12월 만민공동회를 주최했던 독립협회는 해산되고 맙니다.
불과 석 달만에 벌어진 일들입니다.
2008년 아고라를 고민하며 요즘 '한국 근대 토론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오늘 제가 읽고 있는 '한국근대토론의 사적 연구'(전영우 저, 일지사, 1991) 중 일부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고라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 많은 점들을 시사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민공동회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서재필은 어떤 고민을 했던 것인지, 당시 정부는 무엇을 두려워했던 건지..1898년 만민공동회가 2008년 아고라의 길을 묻습니다.
협회의 토론회는 국민 계몽의 주제뿐만 아니라, 신랄한 정부비판도 포함했으므로 민중은 적극 참여했으나 고급관료들은 차츰 몸을 도사리고 후퇴하게 되었다. 마침내 정부도 당황해 서재필의 해고와 독립신문의 폐간을 기도한다. 지도층은 국민계몽의 주제를 선택해 토론회를 진행시키려 했으나 회중의 토론내용은 자연 정부시책 비판이 되기 일쑤였다. 민중은 이미 계몽이 되면서 동시에 정책 비판을 자유로 전개했고, 토론회를 통해 협회의 표면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중략)
마침내 1898년 10월 29일, 독립협회가 주최한 관민공동회를 통해 자강 개혁내각이 구성되고, 헌의 6조가 결의되었다. 의회 설립이 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독립협회의 자주민권 자강운동이 결실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국왕과 일부 수구파들은 독립협회에 기습적으로 반격, 1898년 12월 말, 독립협회는 해산되고 말았다. 독립협회가 발족한 지 불과 3개월에 회원수 만 명이라면 당시 실정으로 만만치 않은 조직 세력이다. 정부내의 부패한 권력층이나 제로와 일제 등 외국세력은 이들 동향을 주목하게 되고, 한편 독립협회도 부패한 내외 권력의 농간에 침해당해 날로 중대 권익을 상실당하는 조국의 위기를 수수방관만 할 수 없게 되자, 점차 정치투쟁에 나서는 동시에 구국 구민을 외치며 궐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종내는 만민공동회 이름으로 장안 시민을 동원, 전면 항쟁을 전개했다. 이 계획을 구상하고 주도한 인물이 바로 서재필이다.
그때 황제의 의중은 이렇게 독립협회에서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필경 서재필이 배후에서 선동하기 때문이니 그만 몰아낸다면 이런 귀찮은 일은 없으리라고 미국공사를 불러 그를 미국으로 돌려 보내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한많은 조국을 뒤로 미국을 향하던 때가 1898년 5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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